제주도 고양이
제주시에 거주할 때에는 집에 길냥이가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고 종종 집 뒤쪽 길가에 길냥이들이 한두 마리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본 기억만 있었다. 그렇게 제주시에서의 5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서귀포 중산간 마을로 이주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지금의 집을 공사하기 전, 거주하던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고 난 뒤, 공사를 위해 집을 둘러보다가 창고에서 길냥이들을 만났다. 그렇게 우리 집을 공사하기 시작했고 몇 개월에 걸친 공사가 끝났다. 이사를 마치고 첫 날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전에 만났던 길냥이들과 또 다른 길냥이들을 만나게 됐다. 우리가 길냥이들의 보금자리를 뺏은 느낌이랄까? 약간 그런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눈치 보지 말고 냥이들 밥이라도챙겨주자 한다. 그렇게 아주 가볍고 즉흥적인 생각으로 우리는 첫 길냥이 급식소를 시작하게 됐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다.
그렇게 처음엔 서너마리의 자주 찾아오는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냥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한 번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집에 와서 밥을 먹는 냥이들의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더니 20마리가 훌쩍 넘어갔다. 앞집, 뒷집,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변 이웃 어르신들 모두 좋아하셨다. 이유는 밖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안 찢어 놔서라고 하신다. 그렇게 동네 길냥이들에게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지금까지 길냥이 급식소를 문 닫을 수 없게 됐다.
소회
길냥이 급식소를 운영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가볍게 집을 찾아 온 고양이들에게 밥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 소회를 정리하며, 그동안 있었던 여러 상황들,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길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매일같이 집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듯한 고양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간식이나 사료를 조금씩 나눠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길냥이 급식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심지어는 불편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처음 급식소를 설치할 때는 이웃 어르신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대부분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면 이웃분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혹시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어르신들도 우리 마음을 이해하고, 오히려 따뜻한 시선으로 고양이들을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길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함께 공존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10년 동안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집 앞으로 도로가 넓혀지면서부터 로드킬이 잦아졌다.
그 외에 질병, 때로는 이유없는 학대까지, 길에서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위험하다.
그러나 길냥이 급식소 운영이 항상 긍정적인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씩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은 자기 집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나에게 와서 치우라고 하시기도 했고, 지나가던 가족 여행자의 아이들은 마당에 길냥이들을 보고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본인이 유튜브를 할 건데 콘텐츠가 길냥이 입양 하기라며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길냥이를 입양해가고 싶다고 수차례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우리 집 길고양이들에게 있어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유일한 보호막일 테니까...
그래도, 10년 동안 많은 고양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급식소를 이용하던 고양이 중 몇은 좋은 입양처를 찾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고, 매년 아이들의 사료를 한두 차례 후원해 주는 인연도 생겼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는 처음 급식소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봉봉'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봉봉이는 우리 집 급식소의 여왕으로, 다른 고양이들과 사이도 좋고 나와 아내를 잘 따랐다.
그런 봉봉이가 어느 날 안마당에서 새끼들을 돌보다가 담을 넘어 들어 온 동네 목줄 없이 기르는 개들에게서 새끼를 지키려고 싸우다 물려 고양이별로 떠났다. 그 후로도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고양이들과의 이별이 두려워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이 고양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길냥이 급식소 운영은 단순한 동물 돌봄을 넘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존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 그들의 생명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또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그들과 교감하는 순간들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요즘 들어 사료값도 많이 오르고 급식소를 찾는 길고양이들도 많지만 길냥이 급식소 운영을 계속할 생각이다.
고양이들에게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쉼터와 부족하지만 식사를 제공하는 정도는 우리 부부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 소회를 마무리하며, 우리 집을 찾아주는 고양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와 작은 쉼터를 제공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ps. 그러니까 생쥐나 바퀴벌레 말고 로또 번호 좀 물어와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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